Korea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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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에 일제강점기와 더불어 한국에는 프로시니엄 아치 극장무대, 현대무용, 학원과 대학의 교육제도 등 수많은 서구적 문물과 제도가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무용의 공연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를테면, 야외에서 공연되는 전통춤들이 극장무대에 서게 되면서 세련되게 변모하였고, 대중들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공연하는 직업무용수들이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무용수들을 양성하는 학원이 들어섰고, 춤은 전문적으로 교육받아야 하는 예술로 승격하였다.
무엇보다도 서구식 현대무용은 한국에서 컨템포러리 댄스가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시이 바쿠의 현대무용>
<근대무용의 선구자이자 무용학원교육의 효시 한성준>

 20세기 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3가지 방향에서 수렴된다.
 첫 번째는 신무용(New Dance)라고 해서 일제강점기(1910~1945)에 일본으로부터 서구문화를 수용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신무용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본에서 신무용이 형성될 무렵에 이 춤은 미국과 독일의 초기 현대무용을 수용하여 개발한 일본식 현대무용이며, 동시에 일본의 전통무대예술인 가부키에 포함된 전통무용을 혁신시켜 만든 모든 춤을 지칭하였다. 일본 신무용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가늠되는 이시이 바쿠(Ishii Baku)는 한국에 신무용을 처음으로 소개시켜준 인물이다. 고전을 중시하는 태도와 봉건적인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1926년에 있었던 그의 공연은 한국인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특히 젊은 엘리트 계층에게 이시이 바쿠의 무용스타일은 신문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시이 바쿠에게 무용을 배우겠다며 일본으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였다.
 한국의 신무용은 유입되던 시기인 1920년대에만 하더라도 일본식 현대무용, 혹은 전통무용의 대척지점에 선 새로운 경향의 춤으로 인식되었다. 유입시점에는 분명히 서구식 현대무용이었는데, 1930년대 이후 해외무대로 진출하던 한국의 신무용가들에 의해 이 춤은 전통춤을 무대화하고 개량화하는 춤으로 변모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무용가는 이시이 바쿠의 제자였으며, 나중에는 그의 명성을 능가하여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게 되는 최승희이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그녀를 “전설적인 무용가”로 칭송하고 있다. 놀랍게도 최승희는 멕시코에서 공연하였던 최초의 한국무용가였다. 최승희는 1930년대에 미국, 유럽, 남미, 그리고 1940년대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 세계순회공연에는 멕시코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의 언론 자료에 의하면, 최승희는 1940년 11월에 멕시코에서 유서 깊은 극장인 팔라치오 드 벨라 아르떼(Palacio de Bellas Artes,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면서 최승희와 그를 따르는 많은 수의 무용가들이 월북하여 북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무용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남한에 남은 최승희의 동료 및 제자들은 1950년대 이후로 신무용을 한국무용의 대표적인 장르로 개발하는데 주력하였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무용의 레퍼토리 일부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한국전쟁 후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던 한국 정부가 문화외교의 전략으로 신무용 단체들을 해외에 꾸준히 파견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1968년 멕시코올림픽게임의 문화행사에 참가했던 한국민속무용단이다. 한국민속무용단이 추었던 춤들인 부채춤, 화관무, 장고춤, 오고무 등은 이제 한국 신무용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들로 자리잡고 있다. 얼핏 보면 이 춤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통무용처럼 보일 것이다. 심지어 한국사람들 조차도 부채춤이나 화관무를 전통무용 혹은 고전무용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춤들은 현대무용의 창작방법을 한국의 전통무용에 접목시켜 개발한 신무용에 속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1960년대 유입된 미국식 현대무용(Modern Dance)이다. 해방 이후의 미군정 시기,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받았던 미국의 군사적 및 경제적 원조, 그리고 남북분단과 미군 주둔 등 한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관계로 인해 한국에는 자연스럽게 미국문화가 범람하게 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한국은 문호를 완전 개방하였는데, 그 이전까지 한국에서 서구문화의 표준은 미국문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용분야도 마찬가지로 한동안 서구무용 혹은 최신무용의 표준은 미국 현대무용에 있었다. 마사 그레이엄, 호세 리몽, 앨빈 에일리, 얼윈 니콜라이, 머스 커닝햄 등 미국 현대무용가들의 움직임과 구성방법은 한국 현대무용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60년대 이후로 무용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던 대학의 무용교수들이 마사 그레이엄 스타일의 현대무용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교육과 공연에 반영시켜 나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의 마사 그레이엄”이라 불리던 육완순이다. 육완순은 한국 최초의 무용과 설치 대학이자, 지금도 무용교육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한 인물이다. 그녀는 이 대학의 교수로 근25여 년간 재직하며 수많은 현대무용 전공자들을 양성하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들 중 나이가 40대 후반에서 60대 초에 걸친 현대무용 전공자 대부분이 육완순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세계순회공연 중의 최승희>
육완순과 대표작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

 육완순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한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현대무용이 크게 번창하였다. 그들이 다루는 창작 주제는 현대사회의 문제, 현대인의 고뇌, 안무가 개인의 감수성 등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신화, 한국적인 감성, 한국문학 등에서 주제와 내용을 끌어오는 안무가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한국적 현대무용이라는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김복희, 안애순, 남정호가 대표적인 안무가들이다.
 그리고 한국적 현대무용은 1970년대 후반에 새롭게 등장한 한국무용의 한 갈래인 한국창작춤(Korean Creative Dance)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창무회, 리을무용단, 국수호디딤무용단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무용단들이다.

 한국 컨템포러리 댄스의 세 번째 경향은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이후로 강대국 신화는 무너지고,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는 퇴색해 지고 있다. 즉 세계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세계화의 영향은 문화에서 지리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탈중심화, 다원화된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 환경 속에서 한국의 안무가들은 미국식 현대무용이나 양식화된 무용으로부터 점점 이탈하게 되었다.
 2000년이 지나자 춤의 내용, 구조, 기법, 미학 등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조짐들이 나타났다. 최근에 와서 이전 시대의 모던댄스와는 다른 가치와 스타일을 탐구하는 안무가들이 자신들의 춤을 컨템포러리 댄스라고 표방하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극장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 도시에서 건립되었다. LG아트센터, 성남아트센터, 고양아름누리가 대표적인 극장이다. 그리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세계무용축제, 국제현대무용축제 등 국제적인 공연페스티벌도 속속들이 개최되고 있다.
 이러한 극장들과 페스티벌은 전 세계로부터 최신 경향의 컨템포러리 무용단들을 초청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의 피나 바우쉬와 사샤 발츠, 프랑스의 앙즐래 프렐조카주, 제롬 벨, 자비에르 르 로이, 스위스의 질 조뱅과 에일리아스, 벨기에의 빔 반데키부스, 영국의 아크라 캄 등 유럽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컨템포러리 무용단들이 한국을 찾아와서 공연하였다.

<전미숙의 최근 공연 포스터>
창무회와 김영희 <무트댄스>

 그리고 최근 한국 정부는 문화산업과 문화외교에 대해 여러 정책과 제도를 입안하며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 그리고 예술가들의 해외진출과 국제교류를 지원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최근의 경향을 사진자료와 함께 설명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안은미는 한국의 고전 텍스트를 팝 아트적으로 해석하고 음악과 미술 분야의 컨템포러리 예술가들을 무용공연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김효진은 미디어 아트 전공의 남편과 공동으로 미디어 퍼포먼스라는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안은미 무용단>
김효진의 <미디어 퍼포먼스>

 보다시피 현재 한국 컨템포러리 댄스의 공연에서는 연극, 영상, 음악이 춤과 동등한 비율로 도입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리고 안무가들은 새로운 개념과 표현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는 동시대 현대예술의 조류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예술로, 또 가장 최신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춤으로 인정받고 있다.